강진 정수사
천태산 자락에 위치한 정수사는
정수사는 사적기에 의하면 옛날에는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었던것으로 여겨지나
현재는 모두 없어지고 다만 대웅전과 요사채 그리고 응진당 등의 소규모
건물이 남아 있을 뿐이다.
정수사는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창건 당시에는 천개산(天蓋山) 계곡을 중심으로 양쪽 언덕에
묘적사(妙寂寺)와 쌍계사(雙鷄寺)의 두 사찰을 건립하여 묘적사에는 천불상을 봉안하였다.
그후 쌍계사는 수정사(水淨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동안 폐허가 되어 있던 것을 조선중기 성운(性雲)스님이 중건하면서 정수사로 사명을 바꾸었으며
이후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조선말까지만해도 강진 지역의 사암을 관장하는 수사찰 이었다.
6.25이후 공비들에 의해 소실된 뒤에 사찰의 스님들이 지역민의 협조를 얻어 중건하였다.
대웅전은 지방유형문화재 제110호로
크기는 정면 삼칸, 측면 2칸인 공포식 맞배지붕으로 처마는 겹처마이고 양 박공 면에는 풍판을 설치하였다.
바닥은 마루판으로 우물마루이고 후면 중앙 벽쪽으로 불단이 설치되어 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간결하며 조선중기 이후의 건물로 추정된다.
정수사 산문 밖은 임진왜란의 격전지로 유주무주 영가들의 나라사랑에 대한 영혼이 항상 머무는 곳이다.
한편 정수사가 자리한 곳은 세계의 자랑거리인 고려청자가 만들어진 도요지가 있어
청자를 만든 도공들의 기도처이자 정신적 귀의처 역할을 했으리라 여겨지는 곳이다.
정수사가 기도도량으로 알려진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특히 이 곳은 수백년간 도공들의 기도처로 각광받아 왔다.
혼을 담아 자기를 빚는 그들에게 있어 몸과 마음의 정결함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자기와 혼연일체가 되지 못하고 그 곳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없다면 단지 그릇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도공들은 자기를 굽기 전 이 곳에서 반드시 지극 정성으로 기도를 했고 또 기도에 따라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하여
그들 사이에선 이 곳 정수사를 최고의 기도도량으로 간주해 왔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강진은 신기라 일컬어지는 고려 비색 청자상감의 발원지이자 중심지이기도 했다.
정수사는 이러한 도공들의 장인정신과 넋을 기리기 위해 도조사(陶祖祠)를 건립하였다.
정수사를 나와 마량만으로 향하던 길에 만난 길...
☆ 2012.8.9(목) 강진 정수사에서 ☆
'소소한 일탈 > 서울 벗어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진 다산초당 가는 길 (0) | 2013.03.18 |
---|---|
강진 마량만 가는 길 (0) | 2013.03.18 |
강진 고성사 (0) | 2013.03.15 |
강진 금곡사 (0) | 2013.03.13 |
강진 하멜기념관 (0) | 2013.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