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탈/서울 벗어나기

강진 고성사

눈부신 봄날 2013. 3. 15. 10:02

강진 고성사

 

고성사는

1805년(순조 5) 가을 강진군에 귀양온 정약용(丁若鏞)이 머물며

혜장(惠藏)과 교우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칠성각·요사가 남아 있으며.

이 중 대웅전에는 조선시대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목조삼존불상이 모셔져 있다.

 

 

다산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를 와서

처음에는 동문 밖 주막집에서 사시다가

다음해에 고성사 보은산방 한칸을 얻어 기거를 하였고.

그러다가 만덕산 기슭 다산초당으로 옮겨가셨다고...

 

 

 

원래 이곳 강진은 지역 유지의 텃세가 세기로 유명한 곳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임해오는 고을 원님들이 없을 뿐 아니라,

와서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달아나기 일쑤였다.

실제 역사에도 이곳은 중앙관리가 파견되지 않았던 기간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관리가 자청해 이곳으로 와서는 지세(地勢)를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강진의 진산인 우두산(牛頭山)이 소가 길게 누운 형국으로,

엉치는 읍쪽으로 두고 머리는 길게 북쪽을 향하다가 돌아보는 것처럼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이 관리는 속으로 소의 귓가에 방울을 달아주면 되겠구나 싶어 지금의

고성사 위치에서 종을 치게 했다는 것이다.

이후로는 고을 원님의 지도에 따라 백성들이 잘 살게 되었다고 한다.

 

얘는 보은산방 구석에 굴러다니고 있던 것인데

아마도 무슨 행사때 사용했던 모형인가 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보은산은 산세가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인데,

꼭대기는 소의 머리에 해당하는 우두봉(牛頭峰)이고,

이 사찰이 자리잡은 곳은 소의 목 아래 방울을 다는 부분에 해당하므로 사찰 이름을 고성(高聲)이라 하였다.

옛날 금릉(金陵)이라 불리던 강진군의 금릉팔경 중 으뜸으로 치는 고암모종(高庵暮鐘)은

해질녘 고성암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말한다.      <강진군청>

 

 

절을 둘러보는 동안 계속 쫄래쫄래 따라다니던 강아지...

 

 

우두봉 아래 작은 선방에는
대나무만 쓸쓸하게 낮은 담 위로 솟았구나
해풍에 밀리는 조수는 산밑 절벽에 부딪히고
읍내의 연기는 겹겹 산줄기에 깔려있네
둥그런 나물 바구니 죽 끓이는 중 곁에 있고
볼품없는 책상자는 나그네의 여장이라
어느 곳 청산인들 살면 못 살리
한림원 벼슬하던 꿈 이제는 아득해라


- 정약용 《제보은산방()》 전문

 

☆ 2013.8.9(목) 강진 고성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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